도산 안창호 기록관
Dosan Media
제1호 / 전4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1912년 1월 촬영. 1904년, 1905년, 1905–1911년으로 발표됨
같은 사진
도산이 오렌지 일꾼들과 찍은 사진 한 장. 세 기관이 세 가지 연도를 붙였고, 하나도 맞지 않는다. 사진 속 도산은 콧수염이 있다. 도산은 1911년 이후에야 콧수염을 길렀다.
사설
UC 리버사이드는 1904년이라 한다. UCLA는 1905년이라 한다. 둘 다 틀렸다. 1912년이다.
여러 인종의 오렌지 일꾼들과 함께 찍힌 이 안창호 사진은 UC 리버사이드와 UCLA의 주장처럼 1904년이나 1905년 것이 아니다. 도산이 리버사이드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직전인 1912년 1월에 찍은 것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도산이다. 1905년 도산의 사진을 보라. 말끔히 면도한 얼굴이다. 도산은 1911년 이후에야 콧수염을 길렀다.
이 사진은 198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헬렌 안 컬렉션(이혜련 컬렉션)으로 처음 전시·출판되었다. 1982년에 정리되어 1984년 한국으로 보내졌다. 나는 이 컬렉션을 속속들이 안다. 이 컬렉션의 유일한 관리자는 나다. 그 계약은 대한민국 정부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UC 리버사이드가 쓰는 사진 거의 전부가 내가 관리하는 헬렌 안 컬렉션에서 나왔다.
필립 안 커디
이 둘을 나란히 보라
사진 · 1905년 ·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송종익, 도산, 방화중, 샌프란시스코, 1905년

1905년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의 가장 이른 사진: 송종익, 도산, 방화중. 가운데 도산, 말끔히 면도한 얼굴. 도산은 1911년 이후에야 콧수염을 길렀다.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 1905년 도산에게는 콧수염이 없었다. 콧수염이 있는 과수원 사진이 어떻게 1904년이나 1905년에 찍힐 수 있는가? UCLA와 UC 리버사이드는 둘 다 UC 직원들이 왕성한 연구자라고 자랑한다.
과수원 사진은 도산이 리버사이드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전 1912년 1월에 찍혔다. 그 뒤 1912년 말과 1913년의 대냉해가 감귤 산업의 한인 노동을 몇 년 동안 멈춰 세웠다. 일자리가 없어 한인들은 파차파를 떠났다. 한인은 맨 마지막에 고용되는 사람들이었다. 1920년 리버사이드의 한인은 20명이었다.
필립 안 커디 · 검증된 1차 자료
사진 · 1908년 · 한국
도산, 한국, 1908년

사진관 의자에 앉은 도산, 한국, 1908년. 면도한 얼굴. 이 호에 실린 연도 있는 초상 셋 가운데 둘째: 1905년 샌프란시스코, 1908년 한국, 1912년 1월 리버사이드.
셋을 나란히 보라. 콧수염은 1911년 이후에 나타난다. 과수원 사진에는 콧수염이 있다. UC 리버사이드는 과수원 사진이 1904년이라 한다.
필립 안 커디 · Press-Conference-Pachappa.pptx (필립 안 커디) 6번 슬라이드에 '1908 Korea'로 설명됨 · 검증된 1차 자료
머리기사
사진 · 발표일 미확인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오렌지 과수원의 스무 명

오렌지나무 울타리 앞에 일렬로 선 스무 명, 손에는 따는 자루와 도구. 인랜드 엠파이어 디지털 전시에 실린 것으로, 설명문은 '1905년에서 1911년 사이 어느 때'라 하고 '한인과 다른 민족 노동자들'이라 부른다.
설명문 원문: “Korean and other ethnic workers picking oranges in Riverside, CA. Photo likely taken sometime between 1905-1911. (Source: USC Korean American Digital Archive).” [번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를 따는 한인과 다른 민족 노동자들. 1905–1911년 사이에 찍힌 것으로 추정. (출처: USC 한인 디지털 아카이브)]
인쇄본 가운데 가장 선명한 복제다. 도산의 이름을 쓰지 않은 유일한 설명문이고, 사진 속 사람들이 모두 한인은 아니라고 말한 유일한 설명문이기도 하다.
뒤따르는 기록들은 이 같은 사진이 다른 곳에 실릴 때마다 다른 연도가 붙은 것들이다. 앞줄 왼쪽 바닥에 전지가위 한 자루가 놓여 있다. 두 사본이 같은 사진인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며, 아랫부분이 잘리지 않은 모든 복제에 나타난다.
이 사진은 도산이 리버사이드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직전인 1912년 1월, 신한민보에 한인 노동 광고를 내기 위해 연출한 사진 연작의 하나다. 왼쪽에서 세 번째,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도산이다. 도산은 1911년 이후에야 콧수염을 길렀다. 이 호의 1905년 공립협회 사진을 보라. 말끔히 면도한 얼굴이다.
한 번은 실수다. 두 번은 선택이다. 그러면 몇 번이 거짓말인가?
The Inland Empire: A Digital Exhibit · 전시의 게시 설명문 스크린숏, 논평을 위해 옮김. 사진의 출처는 USC 한인 디지털 아카이브로 표기됨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나머지 기록
사진 · 2021년 11월 10일 · UCR 아츠,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같은 사진이 전시장 벽에, '1904년'

UCR 아츠에서 파차파 캠프 전시를 위해 벽 높이로 복제한 오렌지 따는 사진 옆에 선 장태한. 신문 설명문은 1904년이라 한다.
설명문 원문: “Edward T. Chang stands near a historic 1904 photo of Dosan Ahn Chang Ho picking oranges in Riverside on display at UCR Arts in Riverside on Wednesday, Nov. 10, 2021. (Photo by Terry Pierson, The Press-Enterprise/SCNG)” [번역: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리버사이드 UCR 아츠에 전시된, 도산 안창호가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를 따는 역사적인 1904년 사진 옆에 선 장태한. (사진 테리 피어슨, 프레스 엔터프라이즈/SCNG)]
1904년은 어느 매체가 이 자료에 붙인 연도 가운데 가장 이르다. 그리고 유일하게 단서 없이 붙인 연도이기도 하다. '경'도, '추정'도, 범위도 없다.
The Press-Enterprise / SCNG · 신문에 게재된 사진과 설명문의 스크린숏, 논평을 위해 옮김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사진 · 2016년 10월 19일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같은 사진, '1905년경'

장태한이 '리버사이드의 파차파 캠프와 한인 선교, 1905–1918'을 발표한 2016년 콜로키움 안내문. 제목 아래 사진이 이 호의 머리기사 사진이며, 여기서는 한 해로 못 박았다.
설명문: "1905년경 리버사이드 오렌지 과수원의 안창호(왼쪽에서 세 번째)와 한인 노동자들. 사진: 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
같은 USC 아카이브를 출처로 든 위 사본과 두 가지가 다르다. 이것은 줄에 선 도산을 지목하고, '한인과 다른 민족 노동자들'이 아니라 '한인 노동자들'이라 부른다. 6년 범위 대신 한 해로 정했다.
안내문 자체의 날짜: 2016년 10월 19일 수요일, 오후 2시–3시 30분.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 Im Colloquium of Korean Christianity · 콜로키엄 안내문 스크린숏, 논평을 위해 옮김. 사진의 출처는 USC 한인 디지털 아카이브로 표기됨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사진 · 2021년 발표 (사진 저작권 표기에 따름)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같은 사진, 일곱 명으로 잘라서

코리아헤럴드 라이프&스타일 면에 실린 같은 사진의 일부. 설명문은 '1900년대 초'라 하고, 도산이 1905년 파차파 캠프를 세웠다고 아무 단서 없이 단언한다.
설명문 원문: “Dosan Ahn Chang-ho (3rd from left), a Korean immigrant and activist who founded Pachappa Camp in 1905, is seen with other workers at a Riverside, California, orange orchard in the early 1900s in this photograph on display at the ‘Pachappa Camp, The First Koreatown in the United States’ exhibition. (Archive photo courtesy of Korean Heritage Library, USC / Photo © 2021 Hyungwon Kang)” [번역: 1905년 파차파 캠프를 세운 한인 이민자이자 운동가 도산 안창호(왼쪽에서 세 번째)가 1900년대 초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오렌지 과수원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있다. '파차파 캠프, 미국 최초의 코리아타운' 전시에 걸린 사진. (사진 제공 USC 한국학 도서관 / 사진 © 2021 강형원)]
줄 왼쪽의 일곱 명만 남기고 나머지를 잘랐다. 일곱 명 가운데 첫 번째가, 머리기사 설명문이 '한인과 다른 민족 노동자들'이라 표현한 바로 그 사람이다.
여기서는 USC 코리안 헤리티지 라이브러리를 출처로 든다. 위 두 사본은 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를 든다.
The Korea Herald · Life&Style · 코리아 헤럴드 게시 설명문 스크린숏, 논평을 위해 옮김. 사진의 출처는 USC 한국학 도서관으로 표기됨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사진 · 발표일 미확인 ·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같은 사진, 한국어로, 두 번째 인물을 지목하며

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 라이브러리 제공이라는 한국어 설명문 아래 실린 전체 사진. 1900년대 초라 하고, 줄에 선 두 번째 인물 조갑석을 지목한다.
설명문: "1900년초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의 안창호, 조갑석 외 다른 일꾼들". 출처 표기는 "사진 제공 USC 코리안 아메리칸 디지털 아카이브 라이브러리".
앞줄 왼쪽 바닥에 전지가위가 있고, 줄에 선 사람들은 이 호의 머리기사 사본과 동일하다.
다섯 설명문 가운데 두 번째 인물을 지목한 것은 이것뿐이다. 영어 설명문은 어느 것도 그러지 않는다.
게재 매체 미확인 · 한국어 게시 설명문 스크린숏, 논평을 위해 옮김. 사진의 출처는 USC 한인 디지털 아카이브 도서관으로 표기됨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사진 · 발표일 미확인
같은 사진, '1912년경'

같은 줄의 사람들이 다시, 이번에는 '1912년경', 리버사이드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의 어느 과수원'으로. 가족은 이 자료를 캘리포니아 밖 고등학생의 과제물로 확인했고, 연도를 맞힌 유일한 자료로 든다.
영어 설명문: "1912년경 캘리포니아의 한 과수원에서 한인 농장 노동자들과 함께 있는 안창호(왼쪽에서 세 번째)." 액자 안 한국어 설명문: "국민회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어느 과수원에서 농장 일꾼으로 종사하던 도산(1912년경)".
캘리포니아 밖 고등학생 과제물이다. 1912년이 맞는 연도다. 도산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 1월에 찍혔다.
학교와 과제 연도가 확인될 때까지 초안으로 둔다. 독자가 다른 기록을 검증하듯 이것도 검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미확인 고등학생 프로젝트 · 가족이 캘리포니아 밖의 고등학생 프로젝트로 파악한 페이지의 스크린숏. 프로젝트 이름은 확인되지 않음 ·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
사진 · 날짜 미확인. 발표된 연도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오렌지 따는 사진

재킷, 조끼, 칼라, 넥타이 차림의 남자가 오렌지나무 줄 끝에 서 있다. 허리에는 따는 자루, 곁에는 가득 찬 상자. 파차파 캠프 전시가 이 사진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사진 속 것들: 펠트 모자, 흰 칼라와 넥타이 위에 재킷과 조끼, 오른손에만 낀 장갑, 끈 달린 장화, 오렌지 열두 개쯤 든 자루, 줄 끝 맨땅에 놓인 스텐실 상자.
연출 사진이다. 1912년 1월 리버사이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신한민보의 한인 노동 모집 광고를 위해 찍은 연작 가운데 하나이지, 하루 일과의 스냅이 아니다. 발표된 연도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오간다. 뒤따르는 기록은 그 가운데 가장 이른 연도가 전시장 벽 높이로 인쇄된 모습이다.
필립 안 커디 · 소장 자료, 출처 미확인
문서 · 1911년 7월 · 베를린
도산은 1911년에도, 그 어느 때에도 오렌지를 따지 않았다

1911년 7월 베를린 의사의 소견서. 양쪽 폐의 카타르, 신경성 심장 질환, "매우 안정하고 담배를 피우지 말며 무리하지 말 것." 도산의 건강 문제를 읽어 보라. 여섯 달 뒤 UC 리버사이드는 도산이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었다고 한다.
도산은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조직한 혐의로 체포·투옥되어 일본에게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여러 해 고생했다. 1911년에도, 그 어느 때에도 오렌지를 따지 않았다. 과수원 사진들은 신한민보 한인 노동 광고를 위해 연출한 사진이다.
베를린의 G. 메르츠바흐 박사, 1911년 7월, 영어 타자. 이 문서는 도산이 그해 여름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유럽에 있었음도 보여준다. 과수원 사진의 콧수염은 거기서 온 것이다. 가족 문서에서.
필립 안 커디 · 검증된 1차 자료